본문 바로가기
  • Forever Journey
카테고리 없음

[The Art] 사바타이 카쟈르 세력들의 사상적 기원 : 중동 현대사가 지닌 비밀 1,2 의 도움말

by 煌錦笑年 2015. 11. 7.

///

카쟈르 계열의 후대들... 사바타이 유태인종들..


유대 메시아 사상의 현대사회 까지의 지속에 의한 


지배적 망상에 절여진 종족들이 저질러 온 


행성의 피칠갑 역사의 사상적 기조..


메시아 사상, 야훼 하나님 이라는 인식의 세계적 확산의 주범들이자, 


탈무디즘, 카발라이즘, 조하르 개념에 기반하여 유태인들이 선택 받은 민족이자 가장 우월한 종족이며


타민족을 지배하여 다스려도 그만이라는 사상적 기조를 최초로 만들어 낸 자가 사바타이 세비.


그럼 저들이 어떻게 행성에 육화하게 되었는가...를 고려해 보면


지역우주에서의 변절의 역사 범위까지 흘러 들어가고


이는 천상정부의 전문들을 통해 캐취하여야만 하는 영역...



한 때, 풀포드 측에서는 카쟈르 나찌 팩션이라는 표현을 쓰기 이전에


사바타이 계열의 범죄자들...이란 표현을 사용했었다..


그리고 사바타이 이전의 계보로 


고대사 힉소스 문명 계열의 노예지배 체제 중심의 사탄주의자들의 기원을 언급하였고


채무노예 방식으로 오늘날의 금융 시스템의 기원을 함께 언급하였으니..


역사적 핵심을 꿰 뚫는 매우 정확한 표현..




그러나 근대 들어서서 사바타이 계열들은 유일 선민 사상으로 자신들인 유태인을 내세웠고


지상에 육화했던 신 에수를 살해한 자들의 후예들이며


팔레스타인 사람이자 고대 아람어를 사용했던 에수를 유태인이라고 종교적 역사적 왜곡으로 채색하였으며


지금은 에수의 재림을 부정하며 여전히 전쟁질에 몰두하다가


전부 얻어 터지고 말았다..



만투스티아 와 시라야의 관점으로 갈릴 정도로 처참하기만 했던 물질계 학교 행성 유란시아.


지금의 이 시기는 어떠한가..


당신은 이를 정확하게 들여다 보고 있는가..   공부가 필요한 이유.  



자신의 기고문을 이 처참한 세계를 위해 던진 


Prof. Wayne Madsen 에게 감사와 사랑을 보내며..


그의 기고문들은 언제나 가장 서슬프른 의식의 날이 서 있다.


  


- The Art -


두산백과

삽바타이 세비

Sabbatai sevi ]
요약
삽바테안(Sabbateans)운동의 창시자로 유대교의 참 메시아(messiah)사상에 편승(便)하여 자신을 메디아로 선언하였다. 16세기 중반 메시아론을 토대로 추종자를 모아 활동하다 오스만 제국의 술탄과 지도부()에 의해 감금되어 사망하였다. 터키 되메(Dönmeh)의 시초이다.
원어명Sabbatai Ẓevi
출생-사망1626 ~ 1676

1626년 터키의 이즈미르(Izmir)에서 태어났다. 이름은 ‘토성()’의 의미를 담고있다.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토성은 고귀한 행성이었으며, 더불어 토성에서 다음 세대의 메시아(messiah)가 출현할 것이라 알려져 있었다. 고대 그리스 주변지역에 거주하던 로마계 유대인(Romaniote Jews)의 가정에서 태어났으며, 아버지는 이즈미르 지역에서 양계업을 바탕으로 무역 활동을 하였다. 부유한 가정에서 생활을 하였고, 아버지의 뜻에 따라 탈무드 교육을 받게 되었다. 스승 랍비 조셉 에스카파(Joseph Escapa)으로부터 유대교 율법을 배웠다. 그러나 탈무드 공부에는 큰 매력을 느끼지 못하고 카발라(Kabbalah)라고 하는 중세 유대 신비주의에 관심을 갖고, 스승 랍비 이삭 루리아(Isaac Luria)를 만나 카발라를 공부하였다. 개인의 수행과 수련을 중시하는 학풍에 따라 수련을 하는 도중에 신적 체험을 하였다고 전해진다. 

17세기 중엽이었던 당시 세계에는 유대교의 메시아가 이스라엘에 강림할 것이라는 메시아론이 대두되고 있었는데, 특히 영국에 널리 퍼져있었다. 그의 아버지는 1646년 영국의 메시아론 추종자들을 집으로 초대하였고, 이들로부터 메시아론에 대해 논의하였다. 카발라의 고전(조하르(Zohar)의 내용을 바탕으로 1648년 스스로 메시아라 선언하였고, 'Tetragramaton'이라 하는 새로운 야훼(Yahweh), 메시아 단어를 전파하였다. 당시 그의 나이가 어렸기 때문에 그의 사상은 널리 전파되지 못하였고, 이즈미르 지역을 중심으로 지엽적으로 확산되었다.

1651년 첫 번째 스승이었던 랍비 조셉 에스카파는 그의 사상이 대두되자 유대교 종교 회의에 회부()하여 유대교에서 제명하였다. 이즈미르를 떠나게 된 그는 1658년 콘스탄티노플에 도착하여 에스카파의 제자 아브라함 야치니(Abraham Yachini)를 만나게 되었다. 아브라함은 그가 새로 강림한 메시아라 확신하였고, ‘위대한 솔로몬의 지혜(The great wisdom of Solomon)’이라 칭하며 그를 신봉하였다.

그의 추종자들은 테살로니키(Thessaloníki)를 믿음의 중심지로 선언한 후 메시아로써의 행보에 박차를 가했다. ‘끝이 없는 하나됨(One without End)’라는 기조 (調) 아래 1660~1662년까지는 카이로(Cairo)에 거주하며 메시아론을 전파하였다. 1663년 예루살렘으로 이주하였으며, 팔레스타인으로 무대를 넓혔다. 팔레스타인을 향하던 중 가자 지역에서 ‘가자의 나탄(Nathan of Gaza)’라 불리는 나탄 벤자민 레비(Nathan Benjamin Levi)를 만나 메시아론을 전파하였다. 나탄은 그의 추종자가 되어 스스로를 엘리야(Elliah)라고 선언하였다. 1665년 이후 세력이 급격히 커지기 시작하였고, 나탄의 조언에 따라 스스로를 ‘영생의 왕, 우리의 메시아(Long live our kingour Messah)’라 칭하고, 부르게 하였다.

그의 강론()의 주된 내용은 오스만투르크 제국의 조세제도()를 비판하는 것이었다. 결국 그는 1666년 오스만 제국의 술탄 메흐메드 4세(재위 1648~1687)에 반기를 들고 술탄 자리에 오르기 위하여 이스탄불(Istanbul)로 입성하였다. 그러나 제국의 재상이었던 쾨프룰루 파질 아흐메드 파샤(Köprülü Fazıl Ahmed Pasha)에 의해 체포, 감금되었다. 이후 아비도스(Abydos)의 감옥으로 이감되었고, 메흐메드 4세는 사형을 언도받거나 이슬람으로 개종하는 것을 택하라 명하였다. 그는 이슬람교로 개종하는 것을 선택하였으며, 그를 따르던 추종자 300여 명도 함께 무슬림으로 개종하였다.

표면적으로는 이슬람을 따랐으나, 유대인의 믿음과 자신을 메시아로 추종하는 사상은 그대로 유지하였다. 이들을 일컬어 되메(Dönmeh)라 불렀다. 1674년 9월 투옥생활 중 사망하였다. 그의 잔존 세력도 차례로 죽음을 맞이함에 따라 1680년 이후 추종 세력이 급격히 줄어 들었다. 현재 삽바타이를 믿는 삽바테안 세력은 터키에만 잔존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며, 약 10만명으로 집계된다.

출처

두산백과 두산백과

[네이버 지식백과] 삽바타이 세비 [Sabbatai sevi] (두산백과)



출처 :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2850265&cid=40942&categoryId=31600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