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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로 흘러내린 서훈의 '20년 땀방울'
◆ 4·27 선언 평화·번영의 길 ◆
서 원장 눈물에는 이번 회담 성사를 위해 달려온 과정에서 겪은 남모를 마음고생뿐 아니라 남북 화해를 위해 헌신한 그의 삶의 무게가 담겼다.
서 원장은 정의용 국가안보실장과 함께 이번 남북정상회담의 실질적인 산파였다. 특히 남북정상회담과 미·북정상회담으로 이어지는 남·북·미 3각 대화 복원에는 '서훈-김영철-마이크 폼페이오'의 인적 네트워크가 크게 작용했다.
평창동계올림픽을 계기로 서 원장과 김영철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통일전선부장) 간 비공식 채널이 본격 가동하며 현안을 조율했다. 두 사람이 남북 정상 간 회담 테이블에 배석한 데서도 두 사람 역할의 중요성을 짐작할 수 있다.
사실 서 원장과 김 부위원장을 중심으로 한 국정원·통전부 라인은 지난해 북한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로 남북 관계가 냉랭할 때도 비공식적으로 유지돼 온 것으로 알려졌다. 서 원장은 미국 중앙정보국(CIA) 국장을 지낸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과도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왔다. 특히 폼페이오 장관이 북한 실정을 이해하는 데 서 원장이 상당한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외교·안보 핵심 관계자는 "서 원장이 지난해 7월부터 폼페이오를 지속적으로 만나 좋은 관계를 맺었다"며 "CIA에도 북한 분석관이 있겠지만 북한 제도와 역사를 꿰고 있고 세세한 부분까지 아는 서 원장이 폼페이오에게 북한을 어떻게 다뤄야 할지에 대해 알려줬다"고 말했다.
미·북정상회담 개최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지난달 말 폼페이오 당시 CIA 국장이 극비로 방북한 것도 서 원장이 김 부위원장을 통해 주선했다는 것이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폼페이오 장관이 미국 정보기관 수장에서 외교 수장으로 그 역할을 확대하면서 서 원장 역할도 더욱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29일 일본을 방문해 아베 신조 총리에게 남북정상회담 결과를 설명하고 문 대통령의 메시지를 전한 것도 서 원장이었다.
서 원장은 세 번의 남북정상회담 개최에 모두 공헌한 인물로도 꼽힌다. 2000년과 2007년 두 차례 남북정상회담에서 그는 모두 기획·협상 실무를 담당했다.
2000년 당시 대북특사였던 박지원 문화관광부 장관을 수행해 베이징에서 북측과 비밀 협상을 했고, 임동원 국정원장이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을 만날 때도 동행했다. 남북 장관급회담 같은 데서 협상이 꼬이면 간접 지원에 나서 협상의 물꼬를 트는 역할을 했다는 평가도 있다.
노무현 정권 시절인 2007년에는 국가정보원 제3차장으로 재직하면서 10·4남북정상회담을 막후에서 성사시켰다. 김만복 당시 국정원장이 비공개적으로 북한을 방문할 때 동행했고, 정상회담문 작성에도 직접 참여했다.
하지만 이 같은 영광은 지난 10년간 그에게 족쇄로 작용했다. 대표적인 '대북전략통'이었지만, 그는 이명박·박근혜 대통령 시절 아무런 역할도 맡지 못했다.
이에 대한 회한은 지난해 5월 국정원장 인사청문회 때 드러났다. '국정원 인사처장 출신'인 김병기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청문회에서 "서 원장은 제일 존경하는 국정원 선배"라며 "이런 분이 국정원으로 돌아와줘서 기쁘다"고 말하면서 울먹였다. 이에 서 원장도 눈시울을 붉혔다.
김 의원은 "서 원장은 1997년 대한민국 국적자로는 최초로 북한 경수로 사업 직원으로 공식 파견돼 약 2년간 북한에 상주했다"면서 "북한에 파견될 때 굉장히 위중한 시기여서 사상 문제에 대해 가혹하리만치 엄격한 신원 재조사를 받은 바 있다. 그때 유서를 쓰고 가셨다"고 기억했다. 그는 "담담하게 가시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고 말했다.
[김기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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